나는 수학과 물리, 전자공학을 좋아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취미로 바둑을 두어왔다.
바둑의 목적은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얻어 승리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수를 계산하며 승부를 겨룬다는 점에서 바둑은 나에게 매력적인 스포츠였다.
바둑을 두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승리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화끈하게 공격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참아가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바둑의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바둑은 이러한 철학이 담긴 대화를 주고받는 ‘수담’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바둑에서 ‘두터움’과 ‘엷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두터움은 느림, 묵직함, 세력 추구와 같은 연관된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엷음은 빠름, 가벼움, 실리 추구와 연결된다.
극단적인 엷음이나 두터움만을 추구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최고수들의 바둑은 보통 실리와 세력의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둔다.
과연 두터움과 엷음은 무엇인가
일본의 바둑기사 후지사와 히데유키(슈코 선생)는 이렇게 말했다
"바둑을 안다는 것은 두터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터움이란 무엇일까?
두텁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실리가 두텁다, 형세가 두텁다, 두터운 모양이다 등의 의미로 말이다
두터움은 실리가 두텁다, 형세가 두텁다, 두터운 모양이다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터운 형태는 공격받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상대의 엷음을 추궁하면서 결국 상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상대가 이를 타개할 경우, 두터움은 무력화될 위험도 있다.
너무 두텁기만 하다면 전투에서 걱정은 없지만 이외에 중요한 걱정이 있다.
두터움만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손에 쥔 실리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오히려 상대와 싸우며 두터움의 힘을 발휘할 텐데 두터움만 가진 채 집이 모자라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르기도 하다. 겨우 반집의 차이 때문에 말이다.
한 판의 바둑은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초반 몇 수를 두며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노력하지만, 중반과 종반에 접어들수록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건 너무하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스친다. 지나친 실리를 탐하다가 대마가 잡히거나 끝내기에서 역전당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친 두터움을 쌓다가 상대의 타개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인공지능(AI)은 바둑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직관적 계산보다 훨씬 정밀한 논리적 계산으로 두터움을 수치화한다. 그 결과, 과거의 수들이 재조명되고 초보자들이 배우던 기본기가 현대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 경우도 생겼다. 새로운 수를 인공지능을 통해 배우고 연구하며 프로 기사들은 더 나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수를 재평가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인생도 바둑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실리를 추구하거나 지나치게 두터움만 유지한다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새로운 기술과 가치를 받아들이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말처럼 타계하기 전까지 타개를 해야 한다.
과연 조화란 균형이란 무엇인가의 두터움과 엷음 사이에서 말이다.
'잡담 > 취미 혹은 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PRS CORE (0) | 2024.12.29 |
---|---|
100문 100답 (0) | 2024.12.03 |
Fender (0) | 2024.06.24 |
PRS,Paul Reed Smith Guitars (0) | 2024.06.18 |
[도서] 언어의 온도 (0) | 2024.05.24 |